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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5/5]어린이명예연구원 출범과 농진청 체험 탐방④

삼국시대의 농업(BC 100년 ~ 676년)

 

철제농기구의 보급과 소갈이(우경, 牛耕)의 일반화.

 

삼국시대에는 철제농기구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종류도 다양해졌습니다.

쇠로 된 보습과 따비 · 팽이 · 가래 · 쇠낫 등의 등장은 작업능률과 생산성의 향상,

그리고 경작 면적의 확대를 가능케 했습니다.

삼국시대 농업의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철제보습의 보급과 함께 쟁기질의 발달입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증왕 3년(502년)에 소갈이(우경, 牛耕)를 시작했다'고

기록이 되어있지만, 소를 이용한 쟁기질은 훨씬 오래 전부터 해왔고,

이 무렵에는 나라의 장려로 일반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철제 농기구가 널리 보급되었고, 축력(畜力) 이용이 일반화되면서 삼국시대에는 경작지가

더욱 넓어졌으며, 1~2년 간격을 유지하면서 규칙적인 휴한농법(休限農法)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발달된 농업샌산력을 바탕으로 삼국시대에는 우수한 민족문화가 꽃피었습니다.

 

선사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 밭농사 → 삼국시대 논농사

 

 

삼국시대(BC 100년 ~ 676년)

- 철제농기구 사용.

- 오곡재배(벼, 보리, 기장, 피, 콩).

- 저수지를 만들기 시작(관개농업보급).

- 벼가 주작물로 등장.

- 국가 주도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풍년을 기원.

- 왕이 농사와 양잠을 친히 감독.

- 소를 생활에 이용(고구려, 3세기).

- 소쟁기질을 국가에서 권장(신라, 지증왕).

- '畓(답)'이라는 논의 우리 식 한자 사용(진흥왕 순수비, 경남 창녕).

- 국가의 감독 아래 제방 축조.

- 야산과 습지를 개간.

 

 

 

 

 

 

 

 

 

 

통일신라시대의 농업(676년 ~ 935년)

 

볏쟁기의 발달 호미의 발달.

 

통일신라시대에는 논도 위치에 따라 저답(渚畓, 하천주변의 논)과 오답(澳畓, 산지에 있는 논)으로

구분할 만큼 경작면적이 넓어졌습니다.

농기구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발달을 보인 것은 쟁기와 호미입니다.

쟁기에 볏이 부착되고, 호미가 발달하면서 깊이갈이(심경, 深耕)와

김매기가 활발히 이루어졌고, 생산력은 더욱 증대되었습니다.

 

촌락문서를 작성하여 농업변동사항을 관리.

 

또한 농업을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관리하였습니다.

신라촌락문석에 의하면 마을단위로 집집마다 농사짓는 땅면적, 과수, 가축의 양 등을

3년마다 파악하였으며 농업 전분야에 걸쳐 나라가 관심을 가지고 관리하였습니다.

 

 

 

통일신라시대(676년 ~ 935년)

- 촌락문서를 작성하여 마을단위로 농업 관리.

- 원예작물을 재배.

- 관리의 급료를 벼로 지급.

- 볏쟁기 사용.

- 근대적 농기구의 출현(호미, 쟁기 등)